일상

별 헤는 밤 - 심야 버스 안에서

호상박 2024. 3. 28. 16:51
심야 버스 안에서

나는 늦은 시간이면 되도록 버스를 타곤 한다. 창가 쪽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수많은 별들이 내게로 쏟아지는 기분을 느끼며, 조금은 차가워진 창문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오늘은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길 희망하며, 가방을 끌어 앉은 채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매일 듣는 노래를 다시 재생하며 세상에서 나의 시간을 멈춘다.

 

첫 번째 별에는 도심의 오늘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강 아래의, 서울에서 가장 바쁜 지역의 꺼지지 않을 빛들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건물들을 보면 영원한 찬란함을 약속하는 듯하다. 하지만 바쁜 발걸음 위에 회색에 가까운 그들의 표정은, 멀리서 보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들의 찬란함은 강 아래 빛나는 길거리가 아닌, 오늘 아침의 온기가 남아 있는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와중에 문득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오늘따라 더 회색에 가까운 기분이 든다.

 

웅장한 엔진소리와 함께 차선을 바꿔 버스는 두 번째 별로 향한다. 찬란한 첫 번째 별에서 떠나 다들 안식처로 향하는 더 작은 별들이 줄지어 서있다. 두 눈은 어둠을 쫓아내려는 듯 앞을 향해 강하게 빛을 내고 있는데, 이 눈들이 모여 하나의 별이 된 채 기나긴 도로를 빛내고 있다. 이들을 구경하듯 몸 값 비싼 건물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줄지어 서있다. 찬란한 도시에 가까운, 이 건물의 몇 개 안 되는 커다란 창문은 환하게 빛나며 본인의 존재를 알리는 듯하다.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고는 있지만 사실은 나도 그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싶은 게 아닐까. 나도 여기에 있다고.

 

두 눈을 빛내던 수많은 작은 별들이 이 도로의 끝을 기점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세 번째 별엔 조금은 더 따뜻한 색들이 모여 있는 듯하다. 인간 사는 냄새가 섞여 눈을 감고 있어도 불편함이 없고 불안함이 없는 곳이다. 어둠 속에도 서로의 눈을 등불 삼아 웃음을 놓지 않는다. 이제 나도 나의 멈춘 시간이 흘러갈 수 있도록 놓아주며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나에게 빨간 불을 보이며 멀어져 가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 즈음, 나의 찬란함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다.

 

별 하나에 더 작은 별들, 그리고 그 작은 별들을 이루는 별이 되어

더는 아무 걱정 없이 오늘과 내일의 별들을 헤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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