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탓 - 잔재

호상박 2024. 3. 26. 15:45

"오늘 점 뺄 수 있나요?"

간호사는 당일 예약은 힘들지만, 점을 몇 개나 뺄 생각이냐고 되물었다. 빼고 싶은 점은 수두룩 하지만 한 개만 이야기하니 빨리 와 달라는 대답으로 전화를 끊었다. 추리닝에 따뜻한 후리스를 하나 걸치고 빠르게 병원으로 향했다.

 

비가 올 것만 같은 우중충 날씨에 '우산을 갖고 올 걸'이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간단히 인적사항과 점의 위치를 설명하니, 시술 방식을 안내하며 결제를 진행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흠칫 놀랬지만, 태연하게 안내문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점이 깊어서 앞으로 추가 진료가 필요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시술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

 

올해로 나는 아홉수를 맞이했다.

사주는 잘 모르지만, 사주상으로는 삼재의 마지막 해가 되어 각별히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내 얼굴에는 두 눈썹 사이에 큰 점이 있다. 관상학적으로 물 길이 흐르는 눈썹과 코 사이에 암초처럼 박힌 점이어서 흐름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흐름 안에서 순조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한 내 덕이라 말하지만,

그 어느 것도 풀리지 않는 순간에는 아홉수니, 삼재니, 관상학이니 하는 여러 탓을 찾아내고 있으니까.

그래서 결심했다.

"점을 빼버리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 탓, 남 탓을 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외부로 내 짐을 넘기는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 물론 나 또한 그러겠지만.

 

나는 내가 지울 수 있는 잔재를 지우기로 했다.

점이 있을 때는 이 점이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하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점이 없어졌을 때는 더 이상 그 점은 나를 괴롭히는 찌꺼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나를 더 객관적으로 쳐다볼 수 있는 방아쇠가 될 것이다.

 

-

 

비가 올까 걱정이 되면 우산을 들고 나오면 된다.

우산을 가져 나오지 않고 맞는 비에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비를 내리는 하늘을 원망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사람이기에, 내 발을 묶는 것들에 얽매일 필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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